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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하고 무료한 나날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영원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 온 그에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 따위는 새로울 것도, 두근거릴 것도 없었다. 긴지는 계곡 끝에 걸터앉은 채 따사로운 햇빛에 잠이 쏟아지는 걸 느끼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길을 주시했다. 산책 삼아서 몇 천리를 날아왔을까. 새로울 것도 없는 마을들 뿐이니 재미삼아 사람을 한둘쯤 홀린 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날이 거의 저물어 갈 때가 되어거야 길 끝에서 사람 냄새가 났다. 이제야 겨우 사람이 온다는 생각에 웃으며 가볍게 계곡에서 뛰어내린 그는 다리가 삔 척 길가에 주저앉아 사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예상대로 얼마 안 있어 한 남자가 덩치 큰 검은 개를 데리고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등에 총포를 맨 것을 보아 사냥꾼인 듯 했다. 긴지는 남자가 그를 볼 수 있는 곳까지 오기 전에 재빨리 귀족처럼 옷차림을 바꾼 채 기다렸다. 이내 그 남자가 다가왔을 때, 그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를 불렀다.
"이봐. 자네 날 도와주지 않겠나."
"어이구? 어찌 된 일입니까?"
"그만 넘어져서 다리를 삐고 말았네. 마을까지 조금만 부축해주지 않겠나?"
"그래요?"
기른 머리를 모아 하나로 묶은 그 청년은 잠깐 긴지를 보더니, 검은 개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개가 다가와 킁킁대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 개가 보통 개가 아님을 눈치챈 긴지는 당황스러워하며 슬그머니 몸을 움직여 개를 피했다. 귀기가 너무 약해 견귀인 줄도 모를 뻔 했던 것이었다.
"이, 이 개가 왜 이러나?"
"요괴는 아닌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나으리. 산에서 사람을 홀리는 요괴들도 있어서 잠시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 그럼 자네는 요괴를 꿰뚫어 볼 수 있나?"
긴지는 모리타의 등에 업힌 채 걸어가며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물어보았다. 이 남자는 올해 25세로, 요괴를 사냥하고 요호 '은왕' 히라이 긴지를 잡으러 여행하는 길이라고 했다. 자신을 잡는 여행이라니. 눈 앞에 두고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잡겠다고 덤비는 게 또 신기하기도 했다. 주인의 등에 업혀가는 긴지를 본 귀견이 작게 낑낑대며 무언가를 알리려고 했지만 긴지가 가볍게 흘려주는 요기에 겁을 먹고 저만치 뒤에서 따라올 뿐이었다.
"아뇨. 요괴는 저 녀석이 알아냅니다. 코가 좋거든요. 바보지만."
"아. 그래? 대단한 개로군."
모리타가 저 개에 대해 별 말은 없었지만 이해는 갔다. 자신이 요괴인지 아닌지도 확신을 못 가지다가, 그 약한 요기에 꼬리를 마는 걸 보면 정말 잡귀긴 잡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이 얼마나 강한지는 그저 까맣게 잊은 후였다. 긴지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적당히 큰 집을 찾아, 모리타에게 그 집으로 향하라고 가리켰다.
"헤에- 나으리 부자시군요."
"후후. 도와준 답례도 할 겸 오늘 하루는 내 집에서 머물게나. 밤도 이미 늦었으니.."
"음- 그럼, 염치불구하고 하룻밤 신세 지겠습니다. 사실 여비도 간당간당했거든요."
모리타는 긴지가 알려 준 집 대문 앞에 서더니, 발로 문을 차대며 소리 높여 사람을 불렀다. 예상외의 행동에 긴지는 웃음이 터질 뻔한 걸 애써 참으며 심하게 움직이는 모리타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팔에 좀더 힘을 주었다.
"이리 오너라-!!"
예상대로 잠시 후, 문 안쪽에서 사람들이 시끌거리더니 나이 든 남자 하나가 졸린 눈으로 문을 열었다. 긴지는 모리타의 어깨 너머로 남자를 보며, 이제 막 잠자리에 들려던 것 같았는데 조금 미안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눈을 부비면서 짜증 섞인 어조로 쏘아붙였다.
"이 시간에 대체 뉘슈?!"
"아, 이 집 주인님을 모셔 왔습니다만.."
"-잉?! 주인님은 지금 주무시고 계시는데 무슨..."
하인의 말에 긴지는 재빨리 몸을 세워, 그와 눈을 맞추었다. 잠시 멍한 표정으로 긴지를 바라보던 그는 다음 순간 기겁을 하며 문을 열고 모리타를 안으로 맞이했다. 문 안쪽에서 누가 왔나 호기심에 나와 있던 젊은 하녀들도 모리타에게 업힌 긴지를 보더니 혼비백산하여 집 안쪽으로 달려들어갔다.
"아이고, 어, 어서 들어십시오!"
"에그머니나. 주인님! 이 시간에 어딜 나가셨던 거예요?!"
"마님, 마님! 주인님이 다치신 것 같아요!"
"나으리, 몰래 나오셨던 겁니까?"
사용인들의 난리 법석에 뭐가 어찌 되어 가는 일인지 깨달은 모리타가 물어 보는 그 말에, 긴지는 멋적게 웃어보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하인들에게 그가 주인이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이야기 외에는 들어맞을 게 없었으니. 긴지는 안방으로 모시겠다는 사용인들을 만류하고, 모리타를 위한 손님방을 먼저 치워 잠자리를 준비하라 이른 뒤 나이 든 하인 한 명만의 부축을 받아 안방으로 향했다. 다른 하인들이 보거나 하기 전에 진짜 집 주인을 처리해야했다.
잠시 후 긴지는 안방에 이미 펴진 이부자리에 앉아, 진짜 집 주인을 두고 고민했다. 배도 고픈데 그냥 죽여서 먹어버릴까 생각도 들었다. 먹어 버린 뒤에 이 집안 인간들을 홀리면 들킬 일도 없이 든든한 배경이 생기는 법이지. 긴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자고 있는 주인의 가슴에 손을 박아 넣어 천천히 심장을 틀어잡고 들어냈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강한 근육덩어리가 힘차게 펄떡이며 손가락들을 밀어 내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손에 힘을 주었고, 근섬유와 혈관들이 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뜯겨나갔다. 이불 위에서 손을 박아 넣어 심장을 뜯어낸 터라, 피는 뿌려지지 않았고 흘러나온 피도 이불에 흡수될 뿐이었다. 오랜만의 혈향에 금방 공복감이 강해지며 입 안이 바짝 말라갔다.
긴지는 황홀한 표정으로 혀를 내밀어 떨어지는 피를 혀끝으로 받아 마셨다. 몇 년을 굶으며 기운이 빠졌던 몸에 한 방울 한 방울 피가 흘러들 때마다 조금씩 생기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내 그 살점의 조각마저 남기지 않고 모두 해치운 긴지는 이불에 손을 닦고서 아까보다 뚜렷이 느낄 수 있게 된 견귀의 기운을 좆아 마당으로 나갔다.
이 녀석도 저녁 식사를 마친 듯 빈 그릇을 앞에 둔 채 자려는 생각인지 몸을 둥글게 모아 엎드려 있었다. 킥킥거리며 소리내 웃은 그는 견귀가 반응하기도 전에 재빠르게 목덜미를 잡아 대형견을 가뿐히 들어 올렸다.
"깽! 깨갱 깨앵! 끼이잉..."
버르적대며 비명을 지르는 카이지를 보고, 긴지는 짜증이 솟구치는 걸 느끼며 목덜미를 쥔 손에 조금 힘을 주어 숨골을 눌렀다.
"조용히 해라. 인간의 종노릇이나 하는 무능한 놈."
"켁...! 사, 살려 주세..."
"닥치고 들어. 네 놈, 혹시나 네 주인에게 혀를 잘못 놀렸다간 산 채로 하나씩 장기를 꺼내 먹여주마. 그런 꼴 당하고 싶지 않다면... 뭘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
긴지의 그 말에 카이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만족한 듯 그는 카이지를 가볍게 담벼락에 내던지고서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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